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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항공유 수출 점유율 26%, 압도적 세계 1위.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항공유 강국이 됐는지, 그리고 지금 이 위기가 우리 정유업계에 어떤 의미인지 제가 직접 파고들어 봤습니다.

세계 1위라는 사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 3월 한국의 항공유 수출액은 12억 4,3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일본으로만 아홉 배가 늘었고, 미국 서부 지역 항공유 수입분의 무려 80% 이상이 한국산입니다. 미국, 일본, 호주, 유럽 각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제발 수출 통제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특별 요청을 보내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제가 이 산업을 얼마나 몰랐나 반성했습니다.
한국의 글로벌 항공유 점유율은 26%로, 2위인 미국보다 두 배 가까이 높습니다(출처: 국제에너지기구(IEA)). 비결은 고도화된 정제 설비에 있습니다.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기름인 중질유(重質油)를 다시 분해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고도화 공정을 통해 고품질 항공유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손에 꼽힙니다.
항공유(Jet Fuel)는 일반 연료와 달리 고도 비행 중 영하 수십 도의 극저온에서도 얼지 않아야 하고, 동시에 엔진 내부의 고열에서도 변질되거나 탄화 찌꺼기가 생기면 안 됩니다. 여기서 고도화 정제 설비란, 저품질 원유나 잔사유를 분해·정제해 고부가가치 연료로 바꾸는 설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버려지던 재료로 항공기 엔진이 요구하는 최고 규격 연료를 뽑아내는 기술입니다. 한국이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수십 년간 이 기술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온 결과가 지금의 점유율로 나타난 것입니다.
- 극저온 동결 방지: 영하 수십 도에서도 유동성 유지
- 고열 안정성: 엔진 내부 고온에서 변질·탄화 없음
- 순도 기준: 수분·미세 불순물 극소화, 균일한 성능 유지
- 공급 신뢰성: 수십 년간 지속적·안정적 대량 공급 실적
위기가 커질수록 한국이 부각되는 이유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봉쇄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전 세계 항공유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전략적 해상 통로로,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가 이 길목을 지납니다. 이 초크포인트(Chokepoint)가 막히면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의 지정학적 이점이 드러납니다. 한국의 주요 석유화학 단지는 울산, 여수 등 해안 입지에 집중돼 있어 해상 수출이 용이합니다. 무엇보다 동아시아에서 동남아·일본·태평양 방면으로 수출할 때 국제 해운의 6대 초크포인트를 거의 통과하지 않는다는 점이 물류 리스크를 크게 낮춥니다. 제가 이 부분을 확인하고 꽤 흥미로웠던 건, 지정학 리스크가 커질수록 오히려 한국의 공급망 안정성이 더 돋보이는 역설적 구조라는 점이었습니다.
유럽은 이미 항공유 비축 물량이 6주치에 불과하다는 발표가 나왔고, 독일 루프트한자는 항공유 가격이 120% 이상 급등하자 계열사 항공기 27대 운항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네덜란드 KLM 역시 항공기 160대의 운항을 감축하기로 결정했습니다(출처: IEA 에너지 안보). 공급이 막히면 각국의 항공유 쟁탈전이 더 치열해진다는 건 이미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횡재세 논란, 정유업계 투자자라면 꼭 알아야 할 것
항공유 수출 호황으로 정유사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하는 가운데, 횡재세(Windfall Tax)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횡재세란 기업이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외부 환경 변화로 얻은 초과 이익에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영어로 'Windfall Tax', 즉 바람이 불어 과일이 뚝 떨어지듯 가만히 앉아서 얻은 이익에 과세한다는 개념입니다.
현재 정제 마진(Crack Spread)은 손익분기점인 4~5달러를 훨씬 넘어선 40달러 이상을 기록 중입니다. 정제 마진이란 원유 1배럴을 정제해 연료로 팔았을 때 남는 순이익을 의미하는데, 이 수치가 8배 이상 뛰었다는 건 정유사 입장에서 가만히 앉아 막대한 초과 이익을 거뒀다는 뜻입니다. 유럽 주요 5개국이 정유업계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이미 논의 중이고, 국내에서도 같은 논란이 붙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슈가 불거질 때 시장의 반응은 꽤 기계적으로 움직입니다.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횡재세 논의가 시작되면 정유업계 주가는 눌리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영업이익이 늘어도 세금으로 상당 부분을 환수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먼저 반영되는 것입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유가가 하락하면 손실이 발생하는데 그때는 세금을 깎아 주느냐는 정유사 측 논리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횡재세 수익을 취약계층 에너지 비용 지원에 쓴다는 명분이 붙으면 사회적 논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에너지 위기 속 한국이 써야 할 전략
그렇다면 한국은 이 위기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제가 이 구조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항공유 공급 능력이 원유 확보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이 중동 원유를 수입해 항공유로 가공·수출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산유국도 고품질 항공유가 필요합니다. 항공유 안정적 공급을 조건으로 원유 장기 공급 계약을 유리하게 끌어낼 수 있는 레버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전략 비축유(Strategic Petroleum Reserve, SPR) 활용입니다. SPR이란 국가가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일정량의 원유·석유제품을 비상 비축해 두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비축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데, 단순히 창고를 늘리는 것보다 비축 물량이 트레이딩(Trading) 형태로 순환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물량이 돌아야 비용을 회수하고 정유사가 새로운 공급 전략을 짤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저가에 대량 수입하고 정제 설비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점은 솔직히 불안 요소입니다. 이들이 한국을 대체하는 항공유 공급국으로 부상하면, 지금의 점유율 1위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이 시기에 기술력과 신뢰도를 더 공고히 다지지 않으면, 위기가 끝난 뒤 오히려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국면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한국이 항공유 수출 세계 1위가 된 이유가 뭔가요?
A. 고도화 정제 설비와 수십 년간 쌓아온 공급 신뢰성이 핵심입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꾸준히 정제 기술을 업그레이드해왔고, 울산·여수 등 해안 입지 덕분에 해상 수출 물류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기술 자체보다 "믿을 수 있는 공급처"라는 국제적 신뢰가 점유율 26%를 만든 진짜 이유라고 봅니다.
Q. 중동 전쟁이 심해지면 한국 항공유 생산에도 영향이 생기나요?
A. 가능성은 있습니다. 한국 항공유의 원료인 중질유 상당수가 중동산이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원유 수급 불안이 장기화하면 생산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현재 비축 원유로 단기는 버틸 수 있지만, 사태가 수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공급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Q. 횡재세가 생기면 정유주 주가는 어떻게 되나요?
A. 과거 사례를 보면 횡재세 논의가 시작될 때 정유업계 주가는 실적과 무관하게 눌리는 흐름이 반복됐습니다. 초과 이익이 세금으로 환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에 먼저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유주에 투자 중이라면 횡재세 입법 논의 동향을 꾸준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중국이나 인도가 한국 항공유 점유율을 빼앗을 수 있나요?
A. 장기적으로는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산 저가 원유를 대량 확보할 수 있고, 정제 설비 투자 여력도 큽니다. 다만 단기간에 한국 수준의 공급 신뢰성과 품질을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이 지금의 기술 격차와 신뢰 자산을 얼마나 빠르게 강화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결론
이번 에너지 위기를 파고들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위기와 기회가 정확히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중동 공급 불안이 커질수록 항공유 국제 가격과 프리미엄이 올라가고, 안정적 공급 능력을 인정받은 한국 정유사의 수출 단가와 마진은 더 좋아지는 구조입니다. 동시에 횡재세 논란과 중국·인도의 추격이라는 복병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위기 속에서 점유율을 지키는 수비가 아니라, 항공유 공급력을 외교·통상 협상 카드로 적극 활용하는 공세적 전략이라고 봅니다. 그 판단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앞으로 몇 달이 지나면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정유업계 동향이나 에너지 관련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IEA의 월간 석유 시장 보고서와 국내 정유사 공시를 함께 살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