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팔란티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냥 주가 많이 오른 AI 회사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이 기업이 단순한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2024년 서학 개미 순매수 4위(ETF 제외 시 2위), 주가 340% 상승. 이 숫자 뒤에는 군사 AI 기술, 방산 투자 열풍, 그리고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윤리적 질문이 함께 있었습니다.

팔란티어는 왜 미국 정부의 단골 거래처가 됐나
팔란티어는 2003년 피터 틸이 세운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기업입니다. 창업자 피터 틸은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한데, 실리콘밸리가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것과 달리 오랫동안 보수적 색채를 유지해온 인물입니다. 그리고 열렬한 반지의 제왕 팬이기도 한데, 회사 이름 '팔란티어'도 원작에 등장하는 천리 밖을 내다보는 마법 구슬에서 따왔습니다.
이 회사가 만드는 핵심 제품 중 하나가 고담(Gotham)입니다. 고담이란 대규모 범죄 예방, 테러 대응, 군사작전 지원에 특화된 데이터 분석 플랫폼으로, 쉽게 말해 정부가 가진 방대한 정보를 하나의 화면에서 통합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입니다. 여기에 AI 기술을 접목해 만든 AIP(AI Platform)가 고담과 통합되면서 군사 모니터링 시스템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2025년 현재까지 팔란티어가 미국 정부와 맺은 계약은 총 308건. 기관별 최대 고객은 미국 국방부로, 누적 계약 규모가 13억 달러를 넘습니다. 국방부를 제외한 다른 모든 기관을 다 합쳐도 국방부 한 곳에 미치지 못할 정도입니다. 처음 이 숫자를 확인했을 때 저도 좀 당황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표현이 너무 순해 보였거든요.
- 미국 국방부: 누적 계약 13억 달러 이상 (최대 고객)
- 미국 보건복지부: 2위
- 미국 국토안보부: 3위
- 2024년 한 해 신규 계약만 6,670만 달러
- 2024년 4분기 기준 매출 구성: 정부 55%, 민간 기업 45%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방산 투자 지형을 바꾼 방식
솔직히 저는 방산 스타트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무기 개발은 대형 방위산업체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그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2023년 유럽 43개국 중 39개국이 전년 대비 군사 지출을 평균 16% 늘렸습니다. 유럽은 수십 년간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서 군사비를 꾸준히 줄여왔는데, 눈앞에서 전쟁이 터지자 방향이 반전된 겁니다. 이 흐름은 투자 시장으로도 그대로 연결됐습니다. 프랑스 시장조사기관 딜라(Dealroom)의 2025년 1월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국방·보안 관련 벤처 투자액이 2024년 52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2019년 대비 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입니다(출처: Dealroom).
미국에서는 2024년 3분기 단일 투자 최고액을 안두릴 인더스트리가 가져갔습니다. 15억 달러. 안두릴은 다양한 센서를 탑재한 무기 체계를 개발하는 방산 스타트업으로, 역시 반지의 제왕 세계관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아라곤의 검). 피터 틸이 투자했고요. 유럽에서는 독일의 헬싱(Helsing)이 4억 8,300만 달러를 유치했는데, 공격용 AI 무인 드론을 만드는 기업입니다.
자율무기 시스템(AWS, Autonomous Weapon Systems)이라는 개념도 이 흐름 속에서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AWS란 인간의 직접 개입 없이 스스로 표적을 선택하고 공격을 수행하는 무기 체계를 말합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드론 무력화 시스템에 대응하기 위해 조종 신호가 끊겨도 AI가 자동으로 적을 공격하는 드론을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한 단계만 더 나아가면 AI가 스스로 인간을 살상하는 체계가 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솔직히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이중용도 기술로서의 AI, 우리는 어디에 서 있나
프리츠 하버라는 화학자가 있습니다.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해 인공 질소 비료를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이 발명 덕분에 인류는 대규모 식량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원리를 이용해 독가스를 발명한 사람도 프리츠 하버입니다. 이중용도 기술(Dual-Use Technology)이란 이처럼 평화적 목적과 군사적 목적 모두에 쓰일 수 있는 기술을 뜻합니다. 핵이 그렇고, AI도 그렇습니다.
2018년 구글이 미 국방부의 프로젝트 메이븐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내부에서 4,000명이 넘는 직원이 항의 청원을 했습니다. 딥러닝의 대모로 불리는 페이페이 리는 "군사용 AI 계약은 통제할 수 없는 논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고, 연구원 12명은 사임했습니다. 결국 구글 경영진은 해당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습니다(출처: Future of Life Institute, 치명적 자율무기 서약). 이 서약에는 개인 연구자 4,805명, 기관 20,047곳이 참여했고, AI 4대 구루 중 하나인 요슈아 벤지오, 딥마인드 공동 창립자 세 명(데미스 허사비스, 무스타파 슐레이만, 셰인 레그), 일론 머스크의 이름도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구글은 AI 윤리 지침을 개정하면서 "AI를 무기와 감시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서약에 서명했던 데미스 허사비스가 구글 AI 분야 책임자로 있는 상황에서입니다. 오픈AI도 마찬가지로 자사 모델을 무기 개발에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2024년 12월 안두릴과 AI 드론 방어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습니다. 구글은 이스라엘의 프로젝트 님버스(Project Nimbus)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사업에 항의한 직원을 바로 해고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라벤더(Lavender)라는 AI 시스템으로 공격 대상을 분류했습니다. 라벤더는 이름이 유사하거나 무장 세력과 친족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사살 후보군으로 분류하는 방식으로 작동했고, 오류율이 10%라는 것을 알고도 그대로 운용됐습니다. 이번 전쟁 첫 3주간 사망자 규모는 2012년 이후 어떤 이스라엘 군사 작전과 비교해도 압도적이었고, 민간인 사망 비율도 60%를 넘었습니다. 제가 이 데이터를 처음 접했을 때 이걸 단순히 '기술 윤리' 문제로만 다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3년 UN 총회에서는 치명적 자율무기 시스템 대응 결의안이 통과됐습니다. 2024년에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2차 리에(REAIM) 회의가 열려 61개국이 참여했습니다. 리에(REAIM, Responsible AI in the Military Domain)란 군사 영역에서 AI를 책임 있게 사용하기 위한 국제 협의체를 의미합니다. 참여국은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협약은 강제력이 없습니다.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은 새로운 국제법 제정 자체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그 사이를 달리고 있고요.
결론
팔란티어를 처음 조사할 때 저는 단순히 '잘 나가는 AI 주식'의 배경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이 기업은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불편한 질문들을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 기술 발전이 삶을 편리하게 만든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술이 라벤더처럼 오류율 10%짜리 살상 시스템으로 운용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규제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있지만, 강제력은 없습니다. 기업들은 자체 윤리 지침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면서 앞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 중심 AI로 가는 길인지, 국가 안보 중심 AI로 가는 길인지, 제 경험상 둘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팔란티어의 주가보다 이 질문이 더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