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올해 유로사토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전차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시장을 훑어보니 화제의 중심은 전차 옆에 붙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드론을 잡는 무인 포탑, AI로 돌아가는 대응 체계, 사람 없이 굴러다니는 지상 차량. 전차 한 대의 성능이 아니라 전차를 둘러싼 판 전체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드론 대응이 왜 이렇게 급한 문제가 됐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제가 처음에 흘려들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몇백 달러짜리 드론이 수십억짜리 전차를 잡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뉴스 속 특이한 장면 정도로 넘겼는데, 이게 3년째 이어지고 있고 유럽 방산 업체들이 전시장에서 내놓는 물건들이 전부 이 문제를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전차 무용론이 다시 나오는 건 이유 없는 얘기가 아닙니다. 정찰 드론이 전차 위치를 잡아서 포병 좌표로 넘기고, FPV 드론이 직접 폭탄을 달고 돌진합니다. 전자전으로 조종 전파를 끊었더니 이번엔 광섬유를 풀면서 날아오는 드론이 등장했습니다. 전파 방해가 통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여기서 FPV 드론이란 조종자가 1인칭 시점으로 직접 보면서 조종하는 소형 드론을 말합니다. 값이 싸고 기동성이 높아 방어하기가 까다롭습니다.
그런데 저는 결론을 다르게 봅니다. 전차가 쓸모없어진 게 아니라 전차 한 대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문제가 전차 바깥에서 생겼으니까요. 그래서 올해 유로사토리에서 봐야 할 것은 K2 한 대의 성능이 아니라 K2 옆에 뭐가 서 있느냐였습니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와 라인메탈이 함께 선보인 차세대 전차 NMBT는 포탑 지붕에 30mm 기관포를 얹은 원격 무장 스테이션을 달았는데, 이 포신이 위로 85도까지 올라갑니다. 거의 수직입니다. 이건 대놓고 말하는 겁니다. 위에서 내리꽂는 드론을 잡겠다고요. KNDS가 처음 공개한 캡틴트 전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레오파르트 2A 차체에 승무원 셋을 전부 차체로 내리고 무인 포탑 아스칼론을 올렸습니다. 대드론 기능과 무인 차량 연동 기능이 기본으로 붙습니다. 두 전차 모두 전력화 목표가 2030년이라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닙니다만, 방향은 분명하게 읽혔습니다.
- FPV 드론: 조종자 1인칭 시점 소형 드론, 수백 달러 수준으로 전차 직격 가능
- 광섬유 유도 드론: 전파 방해가 통하지 않는 진화형 드론, 현재 대응 수단 부재
- 정찰 드론: 전차 위치 탐지 후 포병에 좌표 전달, 간접 위협 수단
현대로템의 무인화 전략, 전차가 아닌 부대 단위로 설계됐다
제가 현대로템 전시 부스에서 가장 오래 머문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업체들이 전차 하나를 어떻게 강하게 만들지를 보여줄 때, 현대로템은 그 전차 옆에 뭘 붙여서 같이 굴릴지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접근 자체가 달랐습니다.
현대로템이 세계 최초로 공개한 것은 AI 기반 무인 포탑형 대드론 다층 방어 체계입니다. 이름이 길어 복잡해 보이지만 구조는 단순합니다. 레이더와 정찰 드론이 멀리서 표적을 먼저 잡습니다. 그 다음 AI가 위협 종류와 방향, 거리와 고도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위협 수준에 따라 대응 수단을 순서대로 씁니다. 재밍이 먼저고, 그래도 들어오면 요격 드론, 더 붙으면 무인 포탑, 최근접에서는 능동 방어 장치까지 동원합니다. 여기서 능동 방어 장치(APS, Active Protection System)란 날아오는 로켓이나 미사일을 전차가 스스로 감지해서 중간에 격추하는 체계를 말합니다. 기존에는 대전차 미사일 방어용으로 설계됐지만, 이제 드론 방어로 쓰임새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핵심이라고 본 건 기관포 하나 더 달았다는 게 아닙니다. 찾고, 식별하고, 판단하고, 대응하는 과정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었다는 점입니다. 드론이 막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단 하나로는 안 되고, 층층이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로템은 이 체계를 K2 위에 얹지 않고 별도 전용 차량 위에 올렸습니다. 이유는 현실적입니다. 전차 위에 모든 걸 다 달면 전차 하나만 지키는 꼴이 됩니다. 보병과 보급 차량은 그대로 노출됩니다. 대드론 전용 차량이 K2와 차륜형 장갑차 사이에서 같이 굴러다니면서 부대 전체를 덮는 방식이 훨씬 실용적입니다. 제가 처음에 "전차에 직접 달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가 이 설명을 듣고 바로 수긍한 부분입니다.
여기에 다목적 무인 차량 HR 셰르파가 붙습니다. 전차 부대가 전진할 때 앞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확인하는 일을 이제 셰르파가 대신합니다. 정찰 장비, 드론, 대전차 미사일까지 상황에 따라 탑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난 5월 현대로템이 미국 안두릴과 업무 협약을 맺었습니다. 안두릴의 AI 운영 체계 레티스(Lattice)를 셰르파와 다족 보행 로봇에 적용하고, 나중에는 전차와 장갑차 같은 주요 플랫폼까지 넓히겠다는 내용입니다. 레티스란 센서로 들어온 정보를 실시간으로 통합해 유인 차량과 무인 로봇, 드론이 하나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AI 지휘 체계입니다. 전차를 잘 만드는 회사가 소프트웨어 회사와 손을 잡는 게 낯설어 보일 수 있지만, 앞으로는 무인 체계를 얼마나 잘 연결하느냐가 승부를 가르기 때문에 제 경험상 이런 방향이 필연적이라고 봤습니다.
수출 전략, 전차 팔고 끝나는 시대는 지났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K방산이 유럽으로 뻗어나간 힘이 가격과 납기와 안정적인 사업 관리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유럽 업체들이 재무장 수요를 생산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에 그 강점이 크게 부각됐죠. 그런데 이게 영원한 무기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유럽도 지금 공장을 늘리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최근 1년 사이 현대로템이 챙긴 것들을 보면 다음 판이 어디서 벌어질지가 보입니다.
먼저 생산입니다. 창원 공장의 K2 생산 능력을 연 4대에서 180대로 올렸습니다. 철도 차량 생산 부지와 인력을 전환해서 만든 숫자입니다. 전차를 사려는 나라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성능이 아니라 대기줄입니다. 계약하고 7년을 기다려야 하는 전차는 필요할 때 없는 전차입니다.
다음은 서류입니다. 지난 7월 현대로템이 나토 품질보증 인증인 AQAP 2110을 취득했습니다. AQAP 2110이란 나토 회원국 간 방산 조달에서 요구하는 설계·개발·제조 전 과정의 품질 관리 표준을 말합니다. 이 인증이 없으면 나토 권역 입찰에서 성능 얘기조차 꺼내보지 못하고 걸립니다. 나토는 전 세계 국방비의 절반 이상을 쓰는 시장이고, 지난해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국방비를 GDP 5%까지 올리기로 했습니다(출처: NATO 공식 사이트). 그 문에 들어갈 열쇠를 국내 기업 최초로 현대로템이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폴란드입니다. 지난 4월 바르샤바에서 폴란드 방산 그룹 PGZ, 제나 브마루와 K2PL 전차 현지 생산 협력 계약을 맺었습니다. 2022년에 1천 대 규모 총괄 계약을 시작으로 1·2차를 거쳐 360대가 확정됐고, 현재 논의 중인 3차 계약이 210대입니다. 3차까지 성사되면 폴란드가 굴리는 K2는 570대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현지 생산을 허용했다는 게 아닙니다. 폴란드 공장에서 만들면 그 도시에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면 폴란드 의회에서 다음 계약 예산을 통과시키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전차를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생산과 정비, 부품 공급이 20~30년 이어지는 구조가 되는 겁니다(출처: 현대로템 공식 사이트).
페루 사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올해 7월 K2 두 대와 K808 여섯 대가 카야오항에 도착해 직접 운용 평가를 받았고, 페루 육군 운용 기술 검토 위원회가 K2를 최우선 추천 기종으로 올렸습니다. 독일과 미국 전차를 제치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항목이 유압식 현수 장치였습니다. 여기서 유압식 현수 장치란 차체를 앞뒤로 눕히고 세울 수 있는 장치로, 경사가 심한 지형에서 포를 수평으로 유지해 정확한 사격을 가능하게 합니다. 한국 산악 지형을 염두에 두고 만든 설계가 안데스 고산 지대에서 점수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K2와 K808을 같이 팔았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전차만 팔면 54대 계약이지만 장갑차까지 묶으면 195대 계약이 됩니다. 정비 창고 하나, 교육 한 번으로 끝납니다.
- 창원 공장 K2 생산 능력: 연 4대 → 180대로 확대
- AQAP 2110 인증 취득: 국내 기업 최초, 나토 권역 입찰 요건 충족
- 폴란드 계약: 총 570대 목표, 현지 생산·정비·부품 공급 20~30년 연계
- 페루 평가: 유압식 현수 장치로 독일·미국 전차 제치고 최우선 추천
자주 묻는 질문
Q. 드론 때문에 전차가 정말 쓸모없어지는 건가요?
A. 저도 처음에 그 가능성을 생각했는데, 전선을 보면 결론이 다릅니다. 전차가 쓸모없어진 게 아니라 전차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드론 대응 체계와 무인 차량이 옆에 붙어야 비로소 전차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뀐 것이죠. 유럽 방산 업체들이 전시장에서 내놓는 물건들이 전부 이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게 그 답입니다.
Q. 현대로템이 안두릴과 손을 잡은 이유가 뭔가요?
A. 무인 차량 열 대를 만들어 놨는데 사람 열 명이 각각 조종해야 한다면 무인이라는 말이 의미 없어집니다. 여러 대를 한꺼번에 다루는 AI 지휘 체계가 있어야 비로소 무인화가 완성됩니다. 안두릴의 레티스가 바로 그 역할을 합니다. 전차를 잘 만드는 것만큼 그 주변 센서와 무인 체계를 연결하는 소프트웨어 역량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이 협약이 나온 것입니다.
Q. 폴란드에서 현지 생산하면 한국 몫이 줄어드는 거 아닌가요?
A. 직관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폴란드 공장에서 만들면 현지에 일자리가 생기고, 그게 다음 계약 예산을 통과시키는 정치적 동력이 됩니다. 현재 3차 계약 210대가 논의 중이고, 성사되면 K2 570대가 폴란드에서 굴립니다. 전차를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부품·정비·후속 지원이 수십 년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전략입니다.
Q. AQAP 2110 인증이 왜 중요한가요?
A. 나토 권역 입찰에서는 이 인증이 없으면 성능 얘기 자체를 꺼내보지 못하고 서류 단계에서 탈락합니다. 나토는 전 세계 국방비의 절반 이상을 쓰는 시장이고, 지난해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GDP 5%까지 국방비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 거대한 시장의 문에 들어갈 열쇠를 국내 기업 최초로 현대로템이 받았다는 게 이 인증의 실질적인 의미입니다.
결론
제가 유로사토리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가장 오래 붙잡은 질문은 이겁니다. 이렇게 좋은 물건들을 다 만들어 놨는데, 정작 우리 군은 언제 이 조합을 갖추게 될까요. 드론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전장에서 살아남는 건 전차 몇 대를 더 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전차 옆에 방어 차량이 붙고, 부상자를 실어낼 장갑 구급차가 따라가고, 그 조합으로 실제 훈련을 해본 부대가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만들 사람은 만들어 놨습니다. 이제 쓸 사람이 결정할 차례입니다.
앞으로 전차의 경쟁력은 장갑 두께나 주포 관통력만으로는 결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드론을 얼마나 일찍 찾아내는지, 무인 차량을 얼마나 잘 부리는지, 흩어진 센서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지가 기준이 됩니다. 거기에 얼마나 빨리 만들어 주는지, 그 나라 안에서 정비가 가능한지, 30년 뒤에도 성능을 올려줄 수 있는지까지 붙습니다. K2가 현대로템을 세계 시장으로 끌어냈다면, 앞으로는 그 K2를 중심으로 얼마나 넓은 판을 짜느냐가 결과를 가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