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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미국이 자국 제너럴 다이나믹스와 독일 라인메탈을 제치고 한국산 K9MH를 차륜형 자주포 사업 잠정 후보로 낙점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이게 진짜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배경을 하나씩 뜯어보니 오히려 이 결과가 필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이란 전쟁 여파, 미국 탄약 공장의 황당한 실패, 그리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공격적인 투자가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미군이 K9MH를 선택한 진짜 이유
제가 이 사업을 처음 추적하기 시작했을 때,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단연 독일 라인메탈의 RCH155였습니다. 여기서 RCH155란 독일 라인메탈이 개발한 차륜형 자주포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성능이 뛰어나다는 복서(Boxer) 차륜 장갑차를 차대로 사용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동간 사격 능력, 즉 적의 탐지와 대포병 사격을 피해 저속으로 움직이면서 포탄을 날리는 기능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제너럴 다이나믹스와 KNDS 연합이 내놓은 피라냐 차륜 장갑차 기반형도 만만찮았습니다. 이 두 후보가 공통적으로 채택한 AGM 포탑은 2010년대에 이미 완성되어 수년간 사격 시험을 거친 무인 포탑입니다. 쉽게 말해 포수 없이 자동으로 장전하고 발사하는 포탑인데, 경쟁사 무인 포탑 중 신뢰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미국 회사인 제너럴 다이나믹스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자국 우선주의 기조와도 맞아떨어졌죠.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생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일으키면서 미국의 방산 예산 구조 자체가 흔들렸습니다. 미국 ABC 뉴스는 2025년 5월 13일, 미 육군이 이란 전쟁 여파로 40억~60억 달러(약 6조~9조 원)의 예산 부족에 시달리며 훈련을 축소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출처: ABC News). 이어 디펜스 뉴스는 제1기병사단과 제2기갑사단의 폴란드 배치 계획이 취소됐다고 전했습니다. 한미 연합 훈련 축소도 같은 맥락이라는 견해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돈이 바닥나는 상황에서 RCH155는 K9MH 대비 두 배 이상 비쌉니다. 트럭을 개조한 K9MH와 달리 RCH155는 복서 장갑차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정면 30mm 철갑탄, 측후면 14.5mm 철갑탄, 하부 중량 8kg 이상의 대전차지뢰를 방어하는 높은 방어력을 자랑하지만, 그 대가가 바로 가격입니다. 미군 입장에서 지금은 성능보다 가성비가 절실한 시점이었고, K9MH는 그 자리를 정확히 파고들었습니다.
- RCH155: 복서 차륜 장갑차 기반, AGM 무인 포탑, 이동간 사격 최초 구현, 가격 최고 수준
- 제너럴 다이나믹스-KNDS 연합: 피라냐 차륜 장갑차 기반, 동일 AGM 포탑, 자국 기업 참여 메리트
- K9MH: 타트라 T82 트럭 기반, 2인 운용, 가성비 최우수, 이란 전쟁 이후 예산 위기 속 낙점
탄약 공급 실패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반격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솔직히 황당하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미국 제너럴 다이나믹스가 텍사스 메스키트에 첨단 155mm 탄약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나섰고, 여기에 5억 3,300만 달러(약 7,46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 개장 이후 지금까지 미 육군 규격을 충족하는 포탄을 단 한 발도 생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튀르키예 탄약 업체 랩콘(Lapkon)의 기술 도입에 있었습니다. 랩콘이 사용한 플로우 포밍(Flow Forming) 기술이란, 가열된 금속 탄체를 대형 롤러로 압축하여 포탄 외형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기존의 단조 공법, 즉 가열된 강철을 대형 망치로 두드려 성형하는 방식보다 생산 속도가 빠르고 다양한 규격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미 육군이 요구하는 신규격 155mm 포탄에 대한 검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공장 내부에 배치된 자동화 로봇들은 서로 충돌하며 고장을 일으켰고, 공장 온도 관리 실패로 내부가 섭씨 60도까지 치솟아 미국 기술자들이 그 안에서 근무해야 했습니다. 미국 국방부 감찰실이 2025년 7월 9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 육군은 2025년 10월까지 155mm 포탄을 월 10만 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2026년 3월 기준 월 3만 6천 발 생산에 그쳤습니다(출처: 미 국방부 감찰실(DODIG)). 납기 미달이 무려 여덟 차례였음에도 책임자인 제너럴 다이나믹스에 법적 제재는 없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 즉 로비력이 강한 업체가 실패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는 결국 외부 공급자에게 기회를 열어줍니다. 그리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그 틈을 정확히 노렸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아칸소주에 13억 달러(약 2조 원)를 투자해 신규 155mm 탄약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미국 소프트웨어 기반 방산 제조 자동화 솔루션 기업 유니온 테크놀로지스와 손잡고 생산 자동화와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 육군이 자주포 사업 제안요청서(RFP)에 현지 생산 능력과 탄약 공급 능력을 핵심 평가 항목으로 명시한 이유가 바로 이 맥락입니다.
여기서 RFP(제안요청서)란 정부나 군이 사업 발주 전에 후보 업체에게 기술 및 사업 계획을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공식 문서입니다. 2025년 9월에 배포된 미 육군의 RFP는 초기 2년간 연간 23문, 이후 연간 48문의 현지 생산 능력 입증을 요구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투자 계획은 이 조건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고, 제가 보기엔 사실상 가장 완성도 높은 답안지를 제출한 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우리 육군도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군에게 제공하는 개발비 2억 3,300만 달러(약 3,100억 원)로 수행하는 야전 운용 테스트 결과를 우리 육군 동원사단용으로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동원사단이란 평시에는 골격 인원만 유지하다가 전쟁 시 예비역을 소집해 완편하는 부대입니다. 현재 우리 육군 동원사단은 12개에서 5개로 대폭 축소됐지만, 포병 전력은 여전히 14명이 필요한 KH179 155mm 견인포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K9MH는 2인 운용이 가능하고, 드론 전장에서 치명적인 기동성과 방어력을 갖춰 이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K9MH는 기존 K9 자주포와 어떻게 다른가요?
A. K9MH는 기존 K9의 궤도형 차대 대신 체코 타트라사의 T82 트럭을 차대로 사용하는 차륜형 자주포입니다. 쉽게 말해 바퀴로 달리는 자주포로, 궤도형에 비해 도로 이동 속도가 빠르고 운용 인원이 2명으로 줄어듭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우크라이나가 T82 트럭을 대량 운용하는 점을 고려해 중동·유럽 수출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Q. 미국이 자국 방산업체 대신 한국 제품을 선택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A. 현재 잠정 후보 선정 단계이고, 미국 현지 생산이 전제 조건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아칸소주에 탄약 공장을 건설하고 미국 내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 엄밀히 말하면 미국 내 생산 기반을 갖춘 한국 기업의 시스템을 채택하는 구조입니다. 이란 전쟁으로 예산이 빠듯해진 상황에서 가성비와 공급 신뢰성을 갖춘 대안을 찾은 결과로 제가 보고 있습니다.
Q. 제너럴 다이나믹스 탄약 공장이 실패한 핵심 이유가 뭔가요?
A.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튀르키예 업체 랩콘의 플로우 포밍 기술을 급하게 도입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랩콘이 기존에 생산하던 포탄은 구형 규격이었고, 미 육군이 요구하는 신규격 포탄에 대한 사전 검증이 전혀 없었습니다. 여기에 공장 자동화 로봇 간 충돌, 온도 관리 실패 등이 겹치면서 7,460억 원을 쏟아붓고도 합격품을 한 발도 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Q. 우리 육군 동원사단이 K9MH를 도입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A. 현재 동원사단 포병은 KH179 155mm 견인포를 운용 중인데, 이는 1문 운용에 14명이 필요합니다. 드론이 전장을 지배하는 현대전에서 견인포는 진지를 점령하고 이탈하는 속도가 느려 생존성이 극히 낮습니다. K9MH는 2인 운용에 빠른 기동성을 갖춰 이 취약점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미군의 야전 테스트 결과를 우리 육군이 공유받는 구조라면, 개발 비용 부담 없이 검증된 장비를 도입하는 셈이 됩니다.
결론
제가 이 흐름을 정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단순히 좋은 자주포를 만든 것만으로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는 점입니다. 탄약 공급 능력까지 패키지로 제시하고, 미국 현지에 2조 원을 투자한다는 결정이 없었다면 기술력만으로 RCH155와 제너럴 다이나믹스 연합을 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잠정 후보 선정이 최종 계약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미 육군의 요구사항이 테스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바뀔 수도 있고, 예산 상황이 다시 달라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최종 선정에서 결과가 달라지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미 육군의 검증 과정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유럽과 중동 수출에 강력한 레퍼런스가 된다는 점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미 많은 것을 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K9 궤도형 자주포가 서방 자주포 시장을 장악한 수출 신화를 K9MH가 차륜형 시장에서 이어갈 수 있을지, 앞으로의 테스트 결과를 계속 추적할 예정입니다.